보이차 투자 관련하여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중국의 사회경제 교육지식 사유재산 경제인식 경제활동 자유도등을 고려했을때 개인 또는 차창이 좋은 보이차를 만들어 소장해서 묵혀먹고 투자하기 위하여 보이차를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로 “아니었다”가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습니다.
오히려 1950~1990년대 보이차는 ‘투자상품’이 아니라 ‘계획경제 아래의 생활필수품·수출상품·변경(邊疆) 공급품’이라는 성격이 훨씬 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차를 만들어 수십 년 보관해 가치가 오르기를 기대한다”는 개념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청궁 차문화 연구에서는 황실 차 사용에 ‘귀신천진(貴新賤陳)’, 즉 새 차를 귀하게 여기고 묵은 차를 낮게 보는 원칙이 작용했으며, 황제가 마신 것은 대체로 그해 새로 들어온 공차였고 남은 묵은 차는 하사·처분 등으로 소진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관련링크)
1. 1950~1978년 : 계획경제 시대
이 시기의 중국 사회를 보면
- 토지 사유재산 거의 없음
- 기업 대부분 국영
- 생산량은 국가계획
-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제한
- 시장가격보다 국가수매가격
- 개인투자 개념 거의 없음
이런 구조였습니다.
차창의 목표
맹해차창
하관차창
곤명차창
등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가가 요구한 생산계획을 달성하는 것
이었습니다.
즉
- 수출물량 확보
- 티베트 공급
- 홍콩 공급
- 군수
- 변경지역 공급
등이 우선이었습니다.
2. 좋은 차를 일부러 오래 묵히려고 만들었을까?
현재까지 확인되는 정부 문헌과 차창 기록을 보면
“장기 투자용”
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생산 → 검수 → 출하
였습니다.
차창은 창고가 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출하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3. 그렇다고 오래된 차가 없었는가?
아닙니다.
오래된 차는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투자하려고 묵힌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이유가 대부분입니다.
① 수출 대기
홍콩 주문
말레이시아 주문
싱가포르 주문
기다리면서 몇 년 저장
② 판매 부진
문화대혁명
경제침체
교통 문제
등으로 창고에 남음
③ 군납
변경 공급
티베트 공급
물류 지연
④ 국가재고
국영창고 보관
⑤ 개인 소비
집에 사둔 차를
오랫동안 마시지 않고 남겨둠
즉
결과적으로 오래 묵은 차가 생긴 것
이지
처음부터
30년 후 비싸질 것이다.
라는 사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4. 왜?
당시 중국 경제에서는
투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950~1970년대
개인이
“이 차는 30년 뒤 비싸질 것이다.”
라고 생각해도
- 자유롭게 사고팔 시장도 거의 없음
- 사유재산 보호 미약
- 가격도 국가가 결정
했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적으로
투자재로 보기 어렵습니다.
5. 개인이 좋은 차를 골라 숨겨두었을 가능성
이것은 있습니다.
특히
광동
홍콩
대만
차상(茶商)
노차 애호가
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오래된 차 맛이 더 좋다
는 경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대부분
맛
이었습니다.
가격 상승은 부차적이었습니다.
6. 차창은 숙성을 알고 있었을까?
알았습니다.
1950년대 문헌에도
“越陈越香”
이라는 표현은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가 지금과 다릅니다.
현재는
투자 가치
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당시는
저장하면 맛이 변한다.
정도였습니다.
즉
숙성은 알았지만
투자상품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7. 1973년 숙차 개발도 투자 때문이 아니다.
숙차가 개발된 가장 큰 이유는
홍콩 소비자가
빨리 숙성된 맛
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즉
생차를
30년 기다리기 어려우니
인공 후발효를 개발한 것입니다.
이 역시
투자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8.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개혁개방
↓
개인 경제활동 증가
↓
홍콩 시장 확대
↓
대만 시장 확대
↓
민간 차상 등장
↓
노차 가치 상승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차는
마시는 차였습니다.
9. 1990년대
이 시기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대만에서
- 순료
- 산지
- 교목
- 고수
- 노차
문화가 발전합니다.
그리고
홍콩에서도
노차 경매가 이루어집니다.
이때부터
오래 보관하면 가치가 오른다.
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10. 2000년 이후
여기서 완전히 바뀝니다.
특히
2003~2007년
보이차 붐에서는
처음부터
묵혀서 투자한다.
가 중요한 목적이 됩니다.
이것은
1950~1980년대와
완전히 다른 산업입니다.
당시 차창 사람들의 의식은?
매우 흥미로운 점은
맹해차창,
하관차창,
곤명차창의 여러 퇴직 기술자와 당시 관계자들의 회고를 보면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복됩니다.
- “좋은 원료를 골라 품질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 “국가 계획을 맞추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
- “창고에 오래 둘 이유가 없었다.”
- “노차가 이렇게 비싸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즉, 그들은 ’30~50년 후의 투자상품’을 만든다는 의식보다는 ‘당시 기준에서 가장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보이차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해석
현재 일부 마케팅에서는 “옛날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노차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역사적 자료와 당시 중국의 사회·경제 환경을 종합하면 이 해석은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보다 역사에 가까운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50~1978년: 국가계획경제 아래에서 생산·수출·공급을 위한 상품.
- 1978~1995년: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 요소가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음용 목적이 중심.
- 1995~2002년: 홍콩·대만을 중심으로 노차 가치와 산지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
- 2003년 이후: 보이차가 본격적으로 투자·수집 대상으로 인식되며 현대적인 컬렉션 시장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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